PART V · 두 번째 방 · 관측천문학과 생명
드레이크 방정식 — 은하에 문명은 몇이나,
그런데 왜 이토록 조용한가
우리 은하에만 별이 수천억 개입니다. 그중 우리와 교신할 수 있는 문명은 과연 몇이나 될까요? 1961년 프랭크 드레이크는 이 막막한 질문을 곱셈 하나로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계산해 보면 문명이 꽤 많을 법한데도, 하늘은 지금껏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 다들 어디 있는 걸까요?
§1모르는 것을 정리하는 식
1961년, 전파천문학자 프랭크 드레이크는 웨스트버지니아 그린뱅크의 작은 회의를 준비하며 "은하에 교신 가능한 문명이 몇이나 있을까"라는 질문을 일곱 개의 인수를 곱하는 식으로 쪼갰습니다. 별이 태어나는 속도에서 시작해, 그 별이 행성을 가질 확률, 생명이 살 만한 행성의 수, 거기서 실제로 생명이 태어날 확률, 지성으로 진화할 확률, 우리가 감지할 신호를 낼 확률, 그리고 그런 문명이 얼마나 오래 존속하는가까지 — 하나씩 곱해 나갑니다.
§2값을 넣어 보면 — 낙관과 비관 사이
문제는 뒤로 갈수록 값이 지독하게 불확실하다는 점입니다. 앞의 천문학적 항들(별 생성률, 행성 존재 확률)은 최근 외계행성 관측으로 꽤 좁혀졌지만, 생명·지성·기술·존속기간에 이르면 우리는 표본을 지구 단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식에 낙관적인 값을 넣으면 은하에 문명이 수백만이라 나오고, 비관적인 값을 넣으면 1보다 훨씬 작은 값 — 즉 "지금 이 은하에 우리뿐일지도 모른다"가 나옵니다. 오른쪽 실험에서 일곱 슬라이더를 직접 움직이며 N이 어떻게 요동치는지 확인해 보세요.
§3페르미 역설 — 그런데 다들 어디 있지?
1950년 어느 점심,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동료들과 외계 문명 이야기를 나누다 불쑥 물었다고 전해집니다 — "그런데 다들 어디 있지?(Where is everybody?)" 은하는 수십억 년이나 오래됐고 별과 행성은 넘쳐나니, 문명이 흔하다면 벌써 누군가 우리에게 닿았어야 할 텐데 하늘은 조용합니다. 이 어긋남을 페르미 역설이라 부릅니다. 제안된 해답은 여러 갈래입니다. 문명 자체가 지극히 드물거나, 문명으로 가는 길목에 거의 모두가 걸려 넘어지는 거대한 장벽(대필터, Great Filter)이 있거나, 문명이 기술을 얻자마자 스스로 자멸하거나, 아니면 거리와 시간의 규모가 너무 커서 서로 만날 순간이 어긋나거나, 혹은 누군가는 일부러 침묵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래 두 번째 실험은 그중 "시간 규모" 쪽 설명을 눈으로 보여 줍니다.
이 장의 뒷부분은 앞선 물리학 장들과 성격이 다릅니다. 드레이크 방정식의 뒷항들과 페르미 역설의 해답은 아직 검증할 데이터가 거의 없는 열린 질문이며,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는 그 불확실함 자체를 즐기는 사고실험으로 다룹니다 — 과장된 결론은 경계하되, "우리는 혼자인가"라는 물음이 왜 이토록 매혹적인지 느껴 보세요.
핵심 정리
- 드레이크 방정식 N = R⋆·f_p·n_e·f_l·f_i·f_c·L — 교신 가능 문명 수의 추정 틀
- 정답을 주는 식이 아니라 "무엇을 모르는지"를 항목으로 정리하는 도구
- 뒷항(생명·지성·기술·존속기간)은 표본이 지구 하나뿐 → 값이 매우 불확실
- 페르미 역설: 문명이 많을 법한데 왜 아무 흔적도 없나 — "다들 어디 있지?"
- 존속 기간 L이 짧으면 문명들이 시간 축에서 어긋나 서로 만나기 어렵다
- 1950
- 페르미, 점심 대화 중 "그런데 다들 어디 있지?" — 훗날의 페르미 역설
- 1959
- 코코니·모리슨, 전파(21cm 수소선)로 외계 신호를 찾자고 제안
- 1960
- 드레이크, 오즈마 계획 — 최초의 본격 SETI 전파 탐색 시작
- 1961
- 그린뱅크 회의에서 드레이크 방정식 제시
- 1977
- 오하이오 전파망원경, 강렬한 미확인 신호 'Wow!' 포착 (재관측 실패)
대필터가 우리 뒤에 있다면 좋은 소식입니다 — 가장 어려운 관문을 이미 통과했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앞으로 화성이나 얼음 위성에서 단순한 생명이라도 쉽게 발견된다면, 생명 탄생은 흔한 일이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필터는 우리 앞 어딘가 — 기술 문명의 미래에 — 남아 있다는 불길한 암시가 됩니다. 이것이 페르미 역설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유입니다.